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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탐방/경기도의 산

천마산, 석 자만 더 손이 길면 푸른 하늘을 만질 텐데

by 만경대 2022. 5. 31.

 

 

 

초여름 하늘 활짝 열린 천마산에서 배신의 한을 가늠하다

 

 

동행 : 친구 5

계절 : 초여름

코스 : 마산 역 - 천마의 집 - 천마산 - 뾰족봉 - 깔딱 고개 - 수진사      

 

 

 

 

 

얼마만큼의 미움이 합쳐지면 증오라 할 수 있는 걸까. 

밤낮없이 우는 그녀의 눈물 탓일까. 

원수들과 같은 지역에 묻힌 그녀의 

묘소에서 습한 물기가 젖는 듯하다.

 

                     

하늘이 푸른가, 그렇지 않은가의 구분. 시계視界가 어디까지 되느냐의 척도는 천마산에서 가장 명쾌한 해답을 얻는다. 여름 천마산에서 특히 그렇다.

 

“저 산의 이름이 무엇이냐?”

 

고려 말, 이성계가 사냥을 나왔다가 지나가는 촌부에게 천마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희 마을에서는 그냥 저 산이라고 부릅니다.”

“가는 곳마다 청산이 많지만, 저 산은 꼭 푸른 하늘에 홀笏을 꽂아놓은 것 같도다. 손이 석 자만 더 길면 저 끝에서 하늘을 만질 수 있겠구나.手長三尺可摩天”

 

이성계는 천마산을 보고 그렇게 읊었다. 천마산天摩山이라는 이름의 유래이기도 하다.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천마산은 경춘가도 마치고개에서 북쪽으로 3㎞ 지점인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데 산세가 험하고 조잡하다 하여 예로부터 소박맞은 산이라는 별칭을 지니기도 했었다. 

경춘선에 천마산 역이 개통되면서 천마산 접근이 한결 수월해졌다. 수년 전 평내호평역에서 내려 천마산 진입로 중 한 곳인 남양주시 호평동에 소재한 수진사에서 올라간 적이 있었다.

 

        

   

훌훌 털어내면 오늘이 영원이고 내일도 찰나의 이음일지니 

  

구름은 많아도 쾌청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다

  

천마산 역에서 하차하여 2번 출구로 나오면 천마산 등산로 표지를 볼 수 있다. 병소, 노천, 동수, 인섭이와 천마산 역에서 만나 함께 산행한다. 천마산 역에서 250m 정도 걸어와 정상까지 3.1km라고 표시된 이정표를 보게 되는데 이곳이 가장 최근에 개설된 천마산 역 등산로이다. 

우거진 숲길로 들어서면 초입부터 심한 비탈이다. 여기저기 도토리가 떨어져 있고 야생화도 곱게 피어 걸음 멈춰 허리를 굽히게 한다. 꽤 가파른 산길이지만 초록 짙은 숲 내음도 좋고 느슨하게 이어지는 산길도 좋다. 

 

수림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감성을 자극한다

 

 

“좋은 산길일세.”

“이성계가 느꼈던 것처럼 확 트인 푸른 하늘이지?”

“그렇군.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왔어.”

 

 

숲을 뚫고 쏟아내는 찬연한 하늘빛을 쬐며 오르다 보면 그늘을 걸을 때와는 다른 나직한 감정이 들어찬다. 막바지 사력을 다해 열기마저 식은 빛을 쏟아내는 여름의 끝은 처절한 슬픔이다. 검정 한지를 구멍 낼 양 투사投射의 치열한 몸부림은 차라리 애절하다.

딱히 슬플 일이 없는데도 깨질 것만 같은 푸름, 먼 산까지 시야에 들어차는 늦여름 청명한 천마산이 애잔한 감성을 자아내게 한다.

온 세상 눈부시도록 발광하며 저 자신을 태워 붉은 가을로의 인수인계를 게을리한들 무얼 얻을 텐가. 이미 나무들은 제 살을 도려내고 수풀 여기저기 멍들어 붉다가 검어지기 시작하는걸.

빼앗기기 전에 놓아버리면 계절 바뀌는 과정도 순탄하련마는 책장 하나 넘기듯 가벼이 보내기엔 아쉬움이 잔뜩 남는가 보다. 훌훌 털어버리면 오늘이 영원이고 내일도 찰나의 이음에 불과하단 말을 계절 연결에 빗대기엔 무리가 있는 걸까.

     

초록 붉게 물든다고 그게 무어 그리 대수일까.

초록 물 다 빠지기 전에 따로 떨쳐낼 게 있어 흠이지.

내내 지니고 다니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잖은가.

손 닿지 않아 더 가려운 등짝처럼 내내 

움찔거리게 했잖은가 말일세.

이제 저 산자락 너머로 훌훌 날려버릴 때도 되잖았나.

지녀 병 되고, 안아 독이 될 

그 해묵은 집착 말일세.  

 

 

비좁고 가파른 수림을 빠져나오면서 다시 시계가 트였다

 

 

수림 사이로 천마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잠시 완만하던 길이 다시 고도를 높이다가 돌길로 들어서게 된다. 숲이 열리면서 용문산 백운봉과 가섭봉도 시야에 잡힌다.

많은 이들이 물을 찾아, 계곡 찾아 몰려들었을 양평의 여름도 서서히 정리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발아래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던 남양주시 일대도 차분히 가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옛날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는 그 일대가 옥수와 수목이 무성한 유원지이자 곳곳이 유적지이며 또한 왕릉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조선왕조는 왕이 서거하면 도성에서 사방 100리를 벗어나지 않고 강을 건너지 않는 곳에 왕릉을 조성하였다더군.”

“100리면 40km이니까 딱 양주와 남양주 인근이네.”

“그렇지.”

 

시원시원하게 뻗어 올랐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양주를 비롯한 한양 북쪽의 몇몇 고을이었고, 그중에서도 양주는 가장 우선하여 왕릉이 조성되는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건원릉이랑 광릉이 이 부근에 있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하여 그 후로도 여러 왕릉이 양주 땅에 마련되었던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양주에 왕릉이 조성되었다는 건 그만큼 양주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살만한 땅이었다는 반증 이리라.

수백 년은 족히 되었을 성싶은 아름드리 고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뤄 한여름 무더위마저도 말끔히 씻어주는 곳, 그래서 삼림욕을 겸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국립수목원이 그곳에 있다. 그곳 숲길의 청신한 기운이 늘 푸름의 산소를 한량없이 뿜어낸다.

 

“광릉과 사릉이 인근에 있다는 건 아이러니해.”

“잔인한 면도 없지 않지.”

 

광릉은 조선 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이다. 광릉에서 퇴계원을 지나 남양주시청 쪽으로 약 10km쯤 더 가면 사릉이 있다.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죽임까지 당한 단종, 그 단종의 슬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곱씹으며 82 성상을 살아온 이가 단종의 비 정순왕후다. 얼마만큼의 미움이 합쳐지면 증오라 할 수 있는 걸까. 밤낮없이 우는 그녀의 눈물 탓일까. 원수들과 같은 지역에 묻힌 그녀의 묘소에서 습한 물기가 젖는 듯하다. 

 

살짝 된비알이 나온다

 

열다섯 나이에 왕비가 되어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열여덟에 신랑인 단종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 정순왕후는 남편과 사별하고도 60여 년을 원수들의 부귀영화를 보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죽어서까지 같은 하늘 밑, 그 원수들과 지척에 있으니 이 얼마나 비통한 운명인가. 감각을 잃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래도록 참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드러내지도 못하고 평생 곱씹었던 미움이야말로 증오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모든 감각과 핏기마저 잃어 냉소조차 머금지 못하는 여인이 그런 모습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것 같아 뼈마디가 시려 오는 것만 같다. 

 

 

숲은 너나 할 것 없는 공존의 틀  

 

계단이 무척 길다

  

마석 일대

 

다시 밧줄이 설치된 바윗길과 오솔길을 지나고 긴 계단을 올라 숨을 고른다. 또 한 번의 바위 구간을 치고 오르자 태극기가 펄럭인다. 천마산 정상(해발 812m)이다. 천마산에 안개가 걷혀있는 건 오늘 세 번째 만에 처음이다. 여기서 보는 불암산과 수락산이 새롭다. 도봉산에 올라보게 되는 한결같은 모습이 아니라 더욱 반갑다. 

운길산에서 적갑산을 거쳐 예봉산에 이르는 마루금이 요란스럽지 않고, 하남의 검단산도 그 옆으로 차분하게 선을 긋고 있다. 방향을 돌려 철마산, 주금산, 서리산과 운악산까지 파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정상에 오르자 주변의 많은 산이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저기 저 산들이 있어 행복하지 않니?”
“산더미에서 돈더미를 보는 듯한 네가 부럽다.”
“하하하!” 

눈에 잡히는 산들을 두루 돌아보며 그들과의 추억을 더듬어본다. 숱한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주말 아침에 눈을 뜨면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곳이나 갔었다.

 

경기도 일원의 산들이 거침없이 펼쳐져 있다

 

도봉산을 가려다 전철역 한 구간을 지나치면 수락산으로 향했고, 운길산을 오르려다 맘 바뀌면 예봉산이나 예빈산으로 오르곤 했다. 가까이에 속속 이 산들이 있어 풍요로웠고 지금도 그러하다. 

산 아래로 오남저수지가 시야에 잡히고 천마산의 명물인 스키장도 아주 가까이 슬로프를 뻗어 내렸다. 250m 플라스틱 인조 슬로프를 갖춘 사계절 전천후 스키장인 스타힐 리조트는 수도권 스키 마니아들이 야간에도 즐겨 찾는 곳이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다소 편한 길을 택한다. 전망대에서 잠시 마석 일대를 내려다보고 임꺽정 바위로 내려선다. 안내판에 임꺽정이 이곳에 본거지를 두고 마치고개를 주 무대로 활동했다고 적혀있는 걸 보니 임꺽정의 활동영역은 엄청 넓었었나 보다. 양주 불곡산, 파주 감악산에도 그의 이름을 딴 봉우리가 있으니 말이다. 

 

 

도시에서 다소 떨어진 전원 마을이 무척 평화롭다.

 

아담한 억새밭을 지나고 임도를 따라 걷다가 천마의 집에서 숲길로 들어선다. 참으로 잘 정비된 등산로라는 느낌을 받는다. 임도와 계단, 숲길이 모두 깔끔한데 등산로를 살짝 비켜서 쓰러진 나무를 보게 된다. 고사되어 쓰러진 나무에 곱게 버섯이 피어있다.

 

“나무는 죽어서도 제 몸을 내주어 버섯을 피게 하는군.”

“역시 숲은 너나 할 것 없는 공존의 틀이야.”

“공천 못 받는다고 바로 당을 옮기는 정치판이랑 확연하게 비교되네.” 

 

신뢰가 무너지고 배신이 난무하는 요즈음의 선거판을 떠올리자 불현듯 나란히 걷고 있는 두 마리의 이리가 아른거린다. 한 마리는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은데, 다른 한 마리는 그 반대다. 두 짐승이 나란히 걸으며 애써 균형을 맞추려 하지만 결국 두 마리 모두 자빠지고 만다. 그러자 그때부터 서로 먼저 일어서려 상대를 누르고 할퀸다. 작위적인 맞춤의 요철에 균열이 생기더니 급기야 깨지고 만다. 

건국 이래 70년이 넘도록 우리 정치판은 겨우 같은 고향, 같은 학교 따위의 인연을 큰 결속인 양 내세워 유유상종 모이더니 결국 억지 묶음이자 어설픈 하나였음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 섞임은 하나가 된 게 아니라 하나처럼 목적만 공유하고 있었다는 걸 거듭 확인시켜왔었다. 

 

“살아가면서 누구와 어떤 관계냐 하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신뢰라고 봐.” 

“맞아. 진정한 마음이 오갈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하지.”

 

가파르게 올라온 만큼 내리막도 마찬가지다

 

국민 대통합을 공약하면서도 자기 지지층만 규합하는 자를 어찌 국민의 대표로 선출할 수 있을까. 진정 중요한 게 배제된 채 억지 연출로 조작된 삶에 금이 가면 가장 빨리 드러나는 건 역시 본성이다. 나약하고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본성. 세상을 속이고 상대를 밟고 일어서야만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는 그네들의 속성에서 낭패狼狽의 어원을 떠올리다가 다시 숲을 둘러보니 마치 어둠을 뚫고 나오는 여명을 보는듯하다.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숲은 그 상태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고귀한 질서를. 그리고 그 틀 안에서 강인한 생명을 창조하고 또 유지해낸다. 저는 죽어가면서도 버섯을 피워내고 다른 나무의 둥지를 튼실하게 해 준다.

 

 

하산하면서 뜬금없이 산처럼 사람을 둘러싸고 보호해주는 세상을 그려보게 된다

 

수진사로 내려서면서 천마산을 올려다본다. 하얀 구름이 푸른 하늘을 가볍게 이고 천마산을 유영하고 있다. 캔버스를 펼치고 붓질이라도 하고픈 평화로운 광경이다. 내려와 세상을 둘러보니 칙칙한 잿빛이다. 

하얀 캔버스에 그리고자 한 건 투명하고 평화로운 하늘이다. 그런데 붓을 놓자 캔버스에는 먹물이 번진 것처럼 침침한 먹구름이 그려져 있다. 

권력만 쥐면 온갖 부를 취하고 그 권력을 놓았을 때 줄줄이 벗겨지는 부패의 산물들이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사는 공간이 너무 탁해서 맑은 하늘빛을 눈에 담을 수 없는 이가 어찌 그 빛을 화폭에 담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림은 그리는 이의 손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 그 색감을 달리한다고 했던가.

 

“큰 건 큰손들한테 먹으라고 하고 우린 춘천 닭갈비나 먹으러 가자고. 근처에 잘하는 데가 있어.”